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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리고 둘>을 보고

익명의 동물들 2020. 2. 3. 11:39

“4억년 전 1볼트의 천둥이 아미노산을 만들었고 아미노산은 생명의 근원이 되었으며 그로부터 모든 게 시작되었다.” 양양(조나단 창)의 눈앞에 천둥의 번쩍임이 시청각실 스크린 위로 펼쳐진다. <하나 그리고 둘>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자연현상을 변주 삼아 필연의 포물선을 그려나간다. 모든 것은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죽음에 수렴하기 직전까지 부딪히는 생의 변곡점들이 이 영화를 이루는 원소들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 매혹되는 이유 중 하나는 타이베이 다안구의 중산층 가정집의 풍경을 시시때때로 관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빼곡하게 들어찬 소품들은 집 안의 내밀한 가풍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때 구성된 화면은 집의 전경을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고 문의 틈새로 공간의 일부를 보여주는 식으로 나머지 정보를 생략한다. 방 안의 광경을 보여주는 카메라의 태도는 주인공 가족의 삶에 느닷없이 함부로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거리를 두는 방식이다. 일정한 거리는 영화의 시작과 끝에 이르기까지 긴 호흡으로 유지된다. 의식적으로 카메라가 인물들과 간격을 유지하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인물들의 건망증은 무심하게 처리된다. 하지만 이 건망증이야말로 이 영화의 징후적 표현이다. 가벼운 망각에 가까운 건망증이 인물들의 행동을 중단시키지만, 의식의 심연 속에 있어서 잊고 있던 진실은 인물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추동시킨다. 그로부터 얻게 된 깨달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물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이끈다. 그래서 난쥔과 민민(금연령)은 자신들의 방에서 비로소 대면하게 된다. 이곳의 공기는 이전과 같지 않고 본질적인 변화가 깃들어있는 방이다.
영화는 수시로 일종의 연상작용을 거듭하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양양이 시청각실에서 보고 있던 천둥의 이미지는 비 오는 거리에서 우산을 든 팅팅(켈리 리)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아디(진희성)와 샤오옌(소숙신)이 초음파로 뱃속 아기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보이스 오버로 들리던 목소리는 난쥔(오념진)이 회의실에서 듣고 있던 통역사의 목소리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포개진 사운드는 장면이 전환되는 지점에서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공통의 감각으로 연결된 장면과 장면의 연속은 개별적인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정서를 차곡차곡 쌓는다. 오타(이세이 오가타)는 난쥔에게 계약을 유보시킬 때 속임수를 쓰지 않는 단순한 방식의 카드 뽑기를 보여준다. 복잡하지 않다고 말하는 오타의 말은 난쥔이 루이(가소운)를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상황을 관통하는 심상이 된다. 양양이 난쥔이 준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람들의 뒷통수 사진들은 마치 반쪽짜리 진실들이 물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에 줄곧 제기되는 물음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펼쳐지는 세상에 대한 이해다. 특히 팅팅은 이 물음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하다. 팅팅의 불면증은 할머니의 임종 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의 숨을 맞댄 것처럼 서로의 존재를 기민하게 들여다본다. 물론 할머니는 의식이 없다. 하지만 할머니의 병상 앞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할머니의 시선 그 자체이다. 무의식의 의식 속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팅팅이 깨어난 할머니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래서 팅팅의 환상이라기보다, 할머니의 무의식의 발현에 가깝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모든 것이 종결된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시작된다. 이름도 없는 양양의 사촌이 울음을 터트리면서 죽음 곁에 머뭇거리던 관객은 다시금 생의 활기를 떠올리게 된다. 양양이 할머니에게 전하는 편지는 동시에 에드워드 양이 관객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양양이 사진을 찍어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하려는 시도는 에드워드 양이 이 영화를 통해 시도하려는 것과 닿아있다.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 죽은 자와 살아가는 자 모두에게 뻗치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충만하였을 때, 이 영화는 끝이 난다.

2020.02.03 헌이비